전도서 5:10-20

안네의 일기는 유태인 소녀 안네 프랑크 가족이 탈출에 실패하고 독일 비밀경찰에 잡히기까지 2년간의 은신 생활의 기록입니다. 16살 소녀의 일기에 적힌 일상이 무엇이 특별할까요? 극악한 세계전쟁, 추격자와 은둔자, 잔인한 인간 대학살 등은 분명 평범한 배경은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그것은 단지 평범한 소녀의 생활기록일 뿐입니다. 우리 역시 비슷한 일상을 살아갑니다. 기억에 각인되어 있는 몇몇 순간들을 제외한다면 과거는 대부분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들이 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무엇이 특별한 걸까요?

성경은 그 특별한 이유를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면에서 풀어갑니다. 대부분 우리의 일상은 허망할 정도로 평범한 듯하지만 전쟁을 치르듯 지나온 날들이 대부분입니다. 추적자에게 쫓기듯 군중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숨기기위해 애써야 했고, 때로는 각종 갑질에서 일어나는 인간성 대학살의 처참함에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모두 다 폭풍 같은 나날들입니다. 망망대해에서 풍랑을 만났을 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방향을 잃지 않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방향은 바로 모든 일상에 담긴 하나님의 의미입니다.

사건 중심의 우리는 종종 두 가지 오류에 빠집니다. 첫째는 지금의 반복이 지루해질 때 과거의 기억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옛날이 좋았는데…’ 둘째는 미래 완성의 헛된 꿈속으로 숨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모두 현실이라는 일상의 소중함을 잃고 있을 때 찾아오는 크고 작은 마음의 병들일 수 있습니다.

폭풍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게 만드는 수많은 일상의 사건들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하는 방향은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일상의 의미를 볼 수 있을 때만 보여지는 방향입니다.

인생의 모든 순간과 누림들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앙드레 지드의 금언에 삶이라는 이 눈부신 기적에 그대는 충분히 감탄하지 않는다(지상의 양식)’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는 궁극적인 질문을 하게 마련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살게 하는가?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으려 하는가?

매일매일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우리에게 각종 특별한 기념일들이 많아지는 이유는 너무나 평범한 일상에 특별성을 부여해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닐까요? 일부 예외가 있긴 하지만 우리 인생이 모두 다 드라마처럼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매일매일 거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건이 빈곤해지는 삶에서 우리는 뭐 새로운 거 없나?’ 두루 찾으며 별로 상관도 없는 연예 기사의 가십거리를 찾아 다니고, 정치 이슈에 열을 내고 목청을 높이기도 합니다.

전도서 518, 19절에 보면, ‘일평생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선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일생의 나의 몫에는 하나님의 선물이 있습니다. 나의 인생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모든 일상에서 찬란함을 재발견하는 것입니다. 바람에 이는 잎새에도 가슴 절절히 들리는 소리가 있으며, 잔잔한 호수의 밤물결에도 미세한 격랑은 일어납니다. 아무 것도 아닌 일상에도 서사는 있습니다. 하나님의 큰 그림, 거대한 방향입니다.

해는 매일 아침 선물을 한 아름 안고 떠오릅니다. 일상과 반복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가져옵니다. 수많은 사람이 걷는 길도 새하얀 눈이 덮이고 나면 새길 첫발을 떼는 느낌을 줍니다. 새벽이 눈부신 빛으로 솟아오르려면 어둠의 반복이 필요합니다. 반복은 다시 시작하라는 신성한 허락이며, 우리를 고갈시키기도 하지만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일상의 뷰티에는 하나님의 큰 그림이 있습니다.

어딘지 모를 곳에서 와서/ 누구인지 모를 자로 살며/ 언제인지 모를 때 죽고/ 어딘지 모를 곳으로 가는데/ 나 이토록 즐거우니 놀랍지 않은가(마르티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