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35-44
어떤 미래학자는 가까운 미래에 인류는 죽지 않고 사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때가 온다면 아마도 인간의 몸은 지구온난화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육체를 가질까요? 미세먼지나 병균으로부터 안전하고 웬만한 온도 변화에는 끄떡도 하지 않고, 나이가 들어도 근육이 줄지 않아 애써 운동하지 않아도 될까요? 그렇다면 영생하는 걸까요?
성경은 우리 몸이 죽지 않고 이 땅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영생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죽음을 지나서 비로소 만나는 새로운 차원의 삶을 가리켜 영생이라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씨앗으로 설명합니다. 죽음은 땅에 묻히는
씨앗과 같고 부활은 그 씨앗의 죽음에서 움트는 새로운 생명과도 같다고 합니다. 그 때는 썩는 것에서
썩지 않을 것이, 비천한 것에서 영광스러운 것이, 약한 것에서
강한 것이 나올 것입니다.
썩는 것, 비천한 것, 약한
것, 별로 달갑지 않은 이 언어들이 우리의 몸과 인생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건강하게 살지는 않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병을 갖고
고통과 함께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건강하게 살다가 갑작스런 사고로 장애인이 된 사람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질병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죽음을 향해 가는 동안에는 우리 모두 썩는 몸, 비천한 몸, 약한 몸을 갖고 살다가, 또는 그렇게 노쇠하게 되면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성도의 소망은
거기에서 시작됩니다.
어떤 교수는 파킨슨 병에 걸린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한 중년 남자는
췌장암 검사 결과를 앞두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친구의 아버님은 몇 차례 안과수술 후에 실명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어떤 친구는 뇌졸증에 걸렸습니다. 어떤 목사 아내는 40년 사역
후에 폐암으로 죽었습니다. 어떤 제자는 중년 나이에 남편과 십대 딸을 두고 죽었습니다.
햇살이 따뜻하게 대지에 생명과 온기를 불어넣고 있는 어느 봄날, 한
가득 씨앗을 등에 지고 기름진 들판으로 나가는 농부의 마음은 희망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씨앗을 옥토에
뿌리면서 씨앗이 땅 속에서 죽어 새로운 싹을 틔우는 과정을 슬퍼할 농부는 없습니다.
힘든 삶 어딘가 앞으로 변화될 모습을 담은 씨앗이 숨어 있습니다. 일그러진
얼굴 뼈, 휘어진 척추, 굳어지는 근육, 죽어가는 뇌세포, 그보다 더 처절해 보이는 나의 인생의 일그러진
형상들… 그런 것들이 씨앗처럼 심기워 최고의 영광을 덧입게 될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은 ‘메시지’라는
성경 번역에서 로마서 6장 6-8절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셨다는 것은
‘죽음이 곧 끝이다’는 생각에 종지부를 찍은 것입니다.’ 예수께서 죽으셨을 때 그분은 죄와 함께 잠드셨으며, 다시 사셨을
때 하나님을 우리에게 모셔오셨습니다.’
사흘동안 예수님의 몸은 썩었습니다. 부패과정에서 마르고 해체되었습니다. 그런데 삼일만에 그는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분이 무덤에서 걸어
나오시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그것은 곧 ‘죽음이
끝’이라는 사람들의 생각에 종지부를 찍은 신호가 되었습니다.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묻히듯, 우리의 몸은 땅속에서 해체되거나, 불에 태워 한 줌 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땅에 심긴 씨앗은 하늘에서
꽃을 피울 것이며, 우리의 낮은 몸은 영광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죽음은 시작이 되고, 고난은 영광이 될 것입니다.
그 각자의 영광은 각자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날
때 그 몸은 최고의 영광으로 변할 것입니다.
죽음이 가까워졌다고 느끼신다면 영광이 다가온다고 믿으십시오. 썩는
것은 썩지 않을 것으로, 비천한 것은 영광스런 것으로, 약한
것은 강한 것으로 다시 꽃피고 열매를 맺을 겁니다. 우리의 낮은 몸은 주님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는 그 씨앗의 희망을 품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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