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1-8

기후변화가 가져올 재앙에 대한 다양한 예견들이 이제 눈앞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최근에 접하는 재연재해의 가공할 힘이나 전세계에 걸쳐 사회 경제적 피해를 가져오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은 불확실한 미래의 두려움으로 인류를 몰아넣고 있는 느낌입니다.

최근 들어 말세나 종말이라는 단어뿐만 아니라 각종 음모론과 시한부 종말론의 심각한 영향으로 교회 마저도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구약성경의 묵시록들이나 신약성경의 요한계시록이 마치 이교 전통에서 널리 알려진 예언서 같이 싸구려 상품 취급을 받거나, 심지어 그런 의도로 곡해되고 흥미거리로 와전되는 모습을 보일 때는 참으로 답답한 마음 그지없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요한계시록은 시중에서 일반인들에게 흥미거리로 읽히는 예언서의 종류가 아닙니다. 마치 점쟁이처럼 미래에 일어날 어떤 사건들이나 사람의 이름을 맞추는 일에 사용될 책은 더더욱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의 가장 마지막 부분(22:19-20)에서 사도 요한은 그것을 강조하여 경계하였습니다. 예언의 초점은 구원이며, 종말의 계시는 구원의 완성을 드러냅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내용은 3절에 가서 예언의 말씀이라고 다른 단어로 표현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계시 그리고 예언 단어가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 중요한 틀이 됩니다.

계시와 예언은 각각 다른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계시가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하나님의 궁극적인 틀을 설명한다면, 예언은 궁극적인 일을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 속에서 이루어 가시는지 설명합니다. 계시가 영원한 천국을 상징으로 보여준다면, 예언은 영생으로 이르는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완성되는지 보여줍니다.

요한계시록의 계시는 사도 요한에게 보이셨듯, 마지막 완성의 순간에 모든 사람들에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며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것이요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한다고 했습니다(7). 요한계시록의 예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합니다. 분은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거대한 태풍처럼 역사를 삼키며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드러낼 것이며 완성을 향해 거침없이 흘러갑니다. 세상의 한갓 사건을 점치자는 예언이 결코 아닙니다.

알파와 오메가인 주님이 하나님의 구원을 궁극적으로 완성하시는 것이 요한계시록의 웅대한 그림입니다. 속에 성도들이 있습니다. 바로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들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이 보여주는 어린 양의 혼인잔치 주인공은 신부 하나님의 백성들 사람 사람입니다.

유대의 혼인 전통에서 정혼으로 법적 부부가 신랑 신부는 일년간 각각 헤어져 혼인 잔치를 준비합니다. 때의 신부에게 혼인예식을 준비하는 모든 날들 속에 미래는 현재가 됩니다. 모든 순간이 혼인과 신랑으로 가득합니다. 정결하고 순전하게 혼인을 준비했던 신부에게 혼인잔치의 날은 최고의 기쁨이며 명예가 됩니다. 혼인잔치의 신부에게 주어지는 보상과 명예는 편안함과 안일함 대한 것이 아니겠지요. 날의 보상은 신부의 절제 대한 것입니다.

  일들은 반드시 속히 일어날것입니다(1). 희망이 없어 보이는 어렵고 눈물이 나더라도, 악인의 타락과 불순종이 극에 달한다 하더라도, 날은 반드시 속히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그리워하며 믿음을 지켰던 성도들은 날의 주인공입니다. 눈에서 눈물을 씻으시고 위로하시며 최고의 명예를 주실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