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8:18-20

시한부 종말론은 다양한 형태로 모든 민족들의 설화 가운데 존재하면서 역사의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여 많은 우매한 민중들을 현혹했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기독교 안에서도 시한부 종말론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면서 교회와 성도들을 혼미하게 했습니다. 기독교 내의 시한부 종말론은 대부분은 교리를 잘못 이해했거나 이교적인 세계관으로 교회의 시간을 해석하려는 잘못된 시도에서 기인합니다.

교회의 시간은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시간입니다. 사도신경을 자세히 보시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에서 주님의 지상에서의 삶과 관련한 모든 일들이 과거형으로 기록되어 있고,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만이 현재형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주님의 땅에서의 모든 삶은 하늘에 오르사라는 마지막 단계의 완성으로 끝나면서 지금 주님은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신앙고백과 더불어 교회는 명백히 새로운 시간으로 들어갑니다. 교회의 시간, 교회의 현재,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의하여 시작되고 설립된 새로운 종말의 시간으로 들어갑니다. 여기에는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존재의 성격이 변합니다. 승천이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지각될 있는 공간과 삶을 찾아오셨다가 떠나셨다는 뜻입니다. 그는 우리가 속해 있는 것처럼 이상 세상에 속하지 않으십니다. 그는 본래 계셨던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으로 복귀하셨습니다. 주님은 땅을 포함하는 동시에 초월하는 하나님의 공간에 계십니다. 이것이 교회의 현재 정체성입니다. 교회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영광 속에 존재합니다.

둘째, 영속성입니다. 우리에게 어떠한 번영이 있더라도 어떠한 패배가 있더라도 우리의 자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사라진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는 계속됩니다. 하나님의 존재하심은 세상의 어떤 역사나 문화나 지상교회의 모습에 의해 변하지 않습니다. 분의 존재는 언제나 동일하십니다.

셋째, 하나님의 선교입니다. 에베소서 4:10에서 주님께서 승천하신 이유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라고(in order to fill the whole universe) 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세상을 말씀으로 충만하게 채우시려는 분의 현재 사역과 관계가 있으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부여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세상 끝까지 전하여 충만케 하기 위함입니다(28:18-20).

주님께서 땅에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들이 과거에 놓여 있고 이제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주님과 함께 현재의 영역으로 들어갑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 시대에 말해야 하는 ,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교회의 목적은 세상에 그의 말씀을 채우는 일입니다. 이것을 위해 교회는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주님입니다. 이것이 모든 피조물, 모든 나라들이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를 위해 달리고 경주합니다. 여기에 선교의 시작, 세상 속으로의 그리고 세상을 위한 교회의 파송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인내의 시간을 위하여 주님은 교회를 세상에 두셨으며, 마지막 시간의 의미는 세상이 복음의 메시지로 충만해지는 것이며,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명하는 시간입니다. 이것은 멸망하는 세상 주신 기회이며, 세상을 향한 사명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기다리시며, 교회와 더불어 세상을 기다리십니다. 거룩한 인내의 시간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섭리와 세상 나라들, 서로 반대하고 충돌하던 질서가 하나님 품으로 돌아와 융합과 일치를 이루고자 하심이 하나님의 꿈입니다. 주님의 승천은 현재 교회의 목적과 방향을 명백히 가리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