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28
마이클 샌델 교수의 최신 저작 ‘공정하다는 착각’은 싱어라는 악덕 입시상담가의 2019년 대형 교육스캔들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33명의 부유층 학부모들이 명문대에 자녀를 집어넣기 위해 교묘히 설계된 입시 부정을 저질렀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비리가 그들은 가능했습니다. 첨예한 극한 경쟁 사회에서 세상의 권력이나 금력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 달려가는 길위에서 세상은 결코 공정하지 않았습니다. 비리와 거짓으로 꾸민 이력서로 그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좋은 직업, 좋은 기회, 좋은 미래, 과연 그럴까요? ‘우리는 자녀들이 좋은
조건의 노예가
되게 하기
위해 모든
돈과 열정을
쏟아 붓고
있다’는 말이
합당한 표현이
아닐까요? 높은 수입을
보장하는 직장은
있지만 ‘선한 직장’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기업의 목표는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며 그들에게
‘인적 자원’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자원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히브리의
노예들에게는 노역의
기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것이 끝나
자유를 얻게
되는 날, 그들은 선택하게 됩니다. 그가 주인의 집에서
얻은 처자와
상전을 사랑하여
함께 있기
원한다면 그는
주인의 종이
될 것을
서약하고 종신토록
그 집의
종이 됩니다.
노예가 주인을 선택할
때 그것은
주인의 선택이
아니라 종의
선택입니다. 자유가 주어졌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을
인간 주인에게
맡기고 주권을
포기한다는 것은
그리 행복한
선택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어느
주인도 노예를
위해서 희생하는
주인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각도의
문화적 역학
관계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습니다. 최고 권력자나 최고
부자라 하더라도
그들의 최종
결정은 언제나
주변 무엇인가에
얽혀 있거나
의존하고 있습니다. 세상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결정에 완전한
자유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우리의 결정이 자유롭지
않다는 것은
우리에게 참된
주권이 없다는
뜻입니다.
세상에는 진정한 의미의
주권자도 자유자도
없습니다. 스스로 존재하시면서
완전한 주권을
가진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믿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니케아 신경은
주님에 대해
‘단 한 분의 주님’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선택은
다릅니다. 우리가 가진
자유는 아버지의
집에서 자녀가
갖는 자유이며, 태초에 창조의 중심에
두셨던 인간의
영광입니다.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궁색하게 받는 것이
아니라 태초에
계획된 최고의
자유와 사랑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소유됨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주되심은 나를 위한 것입니다. 노예가 주인을 선택하는
비참하고 불행한
선택이 아닙니다. 완전하고 철저한 하나님의
주권적 결정이며
행동이며, 지극히 위대하고
선하신 하나님의
행동입니다. 우리가 존재하거나
하나님을 생각하기도
전에 그
사랑 안에서
우리를 찾고
발견하신 영원한
자비요 우리를
깨끗하고 흠
없게 만드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행동입니다. 그러한 사랑과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만 있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주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 주인이
오직 자비와
사랑에 근거하여, 오직 우리를 위하여
행동하신다는 진리는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는
한량없는 은혜입니다. 세상의 주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예를 사용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회복과
영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십니다. 세상의 주인이 가진
주권은 거짓이지만
하나님의 주권은
진리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과
함께 나란히
있는 권세는
없습니다. 그런 권세는
세상의 주권자들이
가질 수
없습니다. 그의 권세와
나란히 다른
권세를 세우거나
그 나라와
나란히 다른
나라를 세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을 때, 우리는 세상의 모든
조건들을 버릴
수 있습니다. 그 때에 모든
세상의 권세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폐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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