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6:15-16
지상의 교회는 땅위에서 시간과 역사, 사회와 문화 속에 존재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물임에 분명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지상적이고 인간적인 환경 속에 두셨습니다. 그 안에서 교회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위탁하신 숭고한 선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세상을 위해 존재하지만 세상과는 구별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갖고 있는 이러한 변동성과
과정성에 신앙고백의 의미가 존재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소명을 따라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므로, 적어도 세상에서 교회가 돌아갈 곳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단지
본향을 향한 길에서 맡겨진 사명을 수행할 따름입니다.
그 여정에서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가, 세상은 무엇인가, 궁극적인 가치는 무엇인가, 소망은 무엇인가, 등의 내용들을 확인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신앙고백의
의미입니다. 신앙고백은 교회의 본질과 의미를 규정합니다. 신앙고백이
없다면 교회라 부르지 않습니다.
신앙고백은 신경(Creed)과 신앙고백서(Confession)의 두 가지 형태를 갖고
있으며, 이들은 서로 다른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신경은
보편적으로 모든 시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강제성을 지니고 있다면, 신앙고백서는
특정시대의 특수한 무리의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스스로 선포한 자발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경이
언어의 획일성을 띠고 있다면 신앙고백서는 고백하는 집단에 따라서 언어가 다른 다양성을 띠고 있습니다. 신경이
그 언어 형태를 수정할 수 없는 불가변성을 지니고 있다면 신앙고백서는 수시로 수정하고 증보할 수 있는 가변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회가 가장
보편적으로 선택하는 신경에는 아타나시우스 신경, 니케아 신경, 사도신경, 세 가지입니다. 이들은 기독교의 세 분파라고 할 수 있는 로마 카돌릭교회, 정교회, 개신교회 모두가 공유하는 가장 보편적인 신앙고백의 형태입니다. 이에 더하여 개신교 전통에서는 신앙고백을 항상 새롭게 작성하고자 노력하게 되었는데, 신경의 특성인 단일성을 유지하면서 각 개인과 단체의 신앙의 다양성을 존중하여 각 교단별로 다양한 신앙고백서를
갖게 된 것입니다.
많은
신앙고백 중에
사도신경은 가장
보편적인 신앙고백의 형태입니다.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루터와 칼빈도 사도신경은 성경 전체의 요약이라고 부를 정도로 사도신경의 고백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사도신경 원문에는 ‘크레도 Credo, 내가 믿습니다’라는 표현이 세 번 나오는데, ‘믿음’이 갖고 있는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신뢰, 지식 그리고 고백입니다.
첫째, 믿는다는 것은 신뢰한다는 뜻입니다. 아기가 엄마를 믿듯, 신자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면 우리의 믿음은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궁극적으로 완성하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신앙고백 속에서 신자는 홀로 있지 않습니다. 믿음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과의 만남 속에서 완성되며, 하나님으로 인하여 자신의 생명이 완전하게 채워지고 결정됨을 신자는 보게 됩니다.
둘째, 신앙은 이성적인 행동입니다. 신앙은 비이성적이거나 반이성적이거나 초이성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의미는 초월적인 하나님께서 인간이 이해하고 경험하는 방식으로 찾아오셨다는 뜻입니다. 계시는 내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믿음은 ‘이해된 지식’입니다. 교회는 무수히도 쏟아지는 세상의 질문을 견딜 수 있어야합니다.
셋째, 기독교 신앙은 결단입니다. 신앙이 있는 곳에는 행동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초역사적인 분으로서 역사를 찾아오신 분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역사적인 존재와 본성과 행동에 대한 인간의 답변입니다. 신앙은 고백으로서, 스스로 역사적이시고, 역사가 진행되게 하시고 그것을 완성하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신자의 방식이며 결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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