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6:13-28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먼지투성이 다락방을 뒤지던 어느 수집가는 여러 장의 낡은 악보를 발견합니다. 뭔가 소중한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어 전문가에게 보이니, 악보는 모차르트가 직접 악보 아주 귀한 악보였습니다. 그런데 곡이 어딘가 미완성처럼 느껴집니다. 알고 보니 곡은 협주곡의 피아노 부분에 해당하는 것이었는데, 협주곡의 다른 부분은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악보는 과거에 존재했던, 혹시 앞으로 발견될지도 모를, 아니면 작곡가의 의도에서만 존재했던 어떤 협주곡의 단서입니다. 지금은 재구성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편의 예술 작품임에 분명하고, 자체로는 불완전하지만 하나의 작품을 암시하는 단서가 됩니다.

신앙의 신비를 논할 우리는 종종 이런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 존재하지만 영원무궁한 세계를 인간의 육체와 이성의 한계에 갇혀 있는 동안 인간이 세계를 가늠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단서는 분명히 우리에게 존재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한편으로는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라고 일컫는데, 이것은 개의 다른 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가지는 가지 다른 양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신비란 바로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사이의 긴장 관계에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교회는 모든 세대 모든 지역의 모든 성도들이 참여하는 하나의 교회로서 거룩하고 완전한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반면에 지상교회는 불완전하고 때로는 심하게 타락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교회는 보이지 않는 교회의 증거와 단서로서 땅에 존재하면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하나님의 선교 사명을 수행해 나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실체는 하나의 우주적이고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 보이지 않는 교회입니다. 지상교회는 일부와 단서로서 존재합니다.

교회는 기본적으로 같은 신앙고백을 가진 성도들의 무리입니다. 그리고 신앙 고백이란 세상의 어떠 철학이나 문화로부터 고안된 사유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거듭나게 하셔서 알게 하신지식입니다. 신앙고백 위에 주님은 당신의 교회를 세우십니다.

지상교회가 선교하는 교회로서 땅에 존재하는 동안, 교회가 올바른 교회인지를 분별하는 기준이 있는데,  개혁교회는 교회의 표지로 가지를 제시합니다. 말씀선포, 성례의 바른 시행, 권징의 신실한 시행입니다. 모두는 다시 말씀으로 집약됩니다. 성례가 가시화된 말씀이며, 권징이 훈육의 말씀이라는 면에서 교회의 기준은 근본적으로 성경이라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상교회에서 시행되는 말씀의 선포가 언제나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지상교회로서는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표현함에 있어서 매우 부족할 있다는 말이지요.  부족함의 한계를 넘어 교회가 진리를 그릇되게 가르치고 심지어 부인한다면 교회는 거짓 교회가 있습니다. 신앙의 기본적인 조항들이 공적으로 거부되고, 교리와 삶이 이상 하나님의 말씀의 통제아래 있지 않을 교회는 거짓 교회가 됩니다.

지상교회는 복음선포를 위해 존재합니다. 교회를 통해 올바른 복음이 선포될 , 소식은 사람들과 사회를 변화시킵니다. 때에 교회가 전하는 복음은 내면화된 복음이어야 합니다. 세상에 빛을 비추기 위해서는 성도 자신이 빛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사랑의 실천을 위해 파송된 사람은 사랑을 위해 부름 받았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메시지를 전하는 자는 메시지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선교하는 교회는 먼저 변화된 교회가 되야 하고, 교회는 내면화된 복음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보이는 교회가 증거하는 보이지 않는 교회의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