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십계명의 여덟 번째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은 소유, 분배, 가치 등 성경의 경제에 관한 많은 교훈들이 담고있습니다. 8계명에서 말하는 도둑질은 단순히 밤에 몰래 남의 집에 들어가 물건을 훔쳐오는 것 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에는 보다 깊은 세계관의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배의 기관실에서 열심히 엔진을 움직이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선장이 지시하는 바에 따라 최선을 다해 일하고 게으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배가 도둑질을 하러 다니는 해적선이라면 어떨까요? 기관사가 아무리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여 일하고 노동의 대가로 받은 급료를 가족들에게 보내서 가족의 생계를 성실하게 책임진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가 참여했던 구조적인 도적질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조직폭력배의 패거리 폭력, 나치 독일 전범들의 대학살, 일본군부의 잔혹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제도악들이 조직의 이익을 위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직시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대 교리문답을 설명하면서 일반 시장경제에서, 혹은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에서 암암리에 자행되는 제도적인 약탈과 절취가 모두 도독질이라고 설명합니다.

상대방에게 손해를 끼치는 모든 형태의 거래로 이웃을 이용하는 것 모두가 교묘히 이웃의 소유를 절취한 것과 다름없습니다고압적으로 행동하면서 부당한 금액을 청구하는 사람, 직무에 게으른 사람 등만일 우리가 그 모든 상태로 인간을 본다면, 세계는 희대의 절도범으로 가득 찬, 거대하고 넓은 마구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점잖은 책략가가 요령 좋은 사람으로 보여지고, 현금상자를 터는 도둑이나 빈 집 털이범과 달리,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는 갑부가 영예롭고 훌륭한 시민으로 위장하지만 교묘히 약탈하고 절취하는 도둑들입니다.’

이웃집에 침범하거나 고의로 불법적인 계획을 세운 적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는 자신이 절도범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수많은 방식으로 제도적인 사회악에 동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타락한 세계에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가 부를 창출하는 최선의 수단이 될지는 몰라도, 어떤 체제도 단순히 부만을 창출하지는 않습니다. 특혜와 자본을 가진 사람이 새로운 특권층이 되고, 합법적 비리로 돈을 모은 사람들은 도덕적 결핍성의 중심이 되었고, 지난 30년간 천문학적인 국채와 함께 지나친 소비에 빠져 있던 미국 사회는 점차 도덕성 결핍에 무감각해지고 있습니다.

타락에 대한 무감각이 영적인 무감각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은 현대 교회의 슬픈 현실 중의 하나입니다. 현대의 교회들에게서 물질주의와 탐욕과 이기심으로부터 성경적 경건의 경계를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우려가 사실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공산주의나 무소유의 철학이 그 대안이 될 수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새로운 체제가 아니라 성경이 제시하는 경건한 도덕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성경은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부유한 자를 배척하지 않습니다. 권력이나 부를 가진 사람이 그 수단과 힘을 가지고 다른 사회 구성원을 착취하는 사회적 불의를 성경은 경계할 뿐입니다. 우리는 탐욕과 거짓, 게으름과 낭비,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는 도둑질을 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그리스도인들의 86%가 자신이 도적질을 금하는 계명을 잘 지키고 있다고 주장합니다(조지 바나). 죄에 대한 현대 교회의 생각이 예수님의 가르침보다는 바리새인들의 도덕적 무감각과 오히려 더 비슷해지는 포인트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탈취로 숨쉬고, 약탈의 음식을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과연 우리는 악한 사회에서 믿음으로 행동할 수 있을까요? 천국의 부요를 믿어 가난을 선택하고, 영생의 가치를 믿고 정의롭게 행동할 수 있을까요? 타락일변도의 인류 사회에서 율법 앞에 의인은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믿음을 가진 자의 삶의 목표와 행동의 가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