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0:12
어느 다큐 프로그램에 한 할머니의 내용이 소개되었습니다. 요양원을 찾아온 기자에게 할머니는 대뜸, ‘자식들이 내 재산 다 팔아먹고 나를 여기에 갖다 놨어’라고 분노에 가득해 말씀을 하십니다. 기자는 자식들이 노모님께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어 마지막까지 모셨다는 딸을 찾아갔습니다.
할머니의 말씀과는
달리 재산은 그대로 있었고 할머니께서 지내시던 곳도 정갈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따님은 ‘자식으로서 끝까지 모시려고 해봤는데, 결국은 못했노라’고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합니다. 남편과 자녀들이 점점 집에 들어오기
싫어하게 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집안 전체가 우울해지더니, 나중에는
자신조차도 어머니 간호에 너무 지친 나머지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겁니다. 딸은 결국 복지제도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복지국가에서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에서 책임을 지고 보장을 합니다. 만일에 생부모가 담당해야할 후견인의 역할을 하지 못하여 어린이들이 학대를 받을 때는 국가에서 대신 책임을 지고
돌봅니다. 마찬가지로 젊을 때 열심히 일을 하고 10년간
세금을 잘 냈으면 은퇴 후 노년의 삶은 국가에서 보장을 합니다. 기초적인 주택과 의료혜택을 보장하는
제도입니다.
때로는 제도가
인간 감성보다 더 나은 선택일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 편, 제도에는 인성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지나치게 제도에 의지하게
되면서 사회의 인성은 사막처럼 마르게 됩니다.
복지사회라고 자부하는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형태의 노인 학대는 사실상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형태로 노인이 이용되거나
유기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뉴스위크’지는 병원이 ‘노인을 폐기 처분하는 장로’로 둔갑하고 있다는 우려를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 상원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응답한 병원의 38%가 ‘매주 8명의 노인 환자가 응급 병동에 버려진다’고 보고했습니다.
예수님은 십계명을
요약하시면서 계명은 둘로 나뉘어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둘째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웃사랑’의 시작에
제5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내용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이델베르그 교리 문답을 직접 작성했던
17세기 우르시누스가 ‘이 계명의 의도나 목적은 시민 질서의
보존’이라고 했던 뜻도 거기에 있습니다.
이웃사랑의 첫걸음은
가정에서 시작됩니다. 부모에게 특별한 인격적인 결함이 없는 한 대부분의 경우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보호하여 양육합니다. 부모가 자녀들이 최고의 행복을 누리기를 바라면서 본분을 다하듯, 사회의 윗사람도 자신이 섬기는 사람들의 행복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통치자는 최고의 봉사자입니다. 가장 잘 다스리는 자는 자기 권한의 영역 안에 포함된 사람들을
가장 잘 보호하는 사람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에서 공경이라는 말은 ‘존귀하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이
계명에는 복음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시고 독생자를 내어주고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면서 이루는 것이 ‘존귀하게 여기는 일’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할 때, 가장 존귀하여 여겨 ‘쥐면 꺼질세라 불면 날을세라’ 금지옥엽(金枝玉葉) 키우는 것이 부모사랑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공경한다는 정서는 바로 그러한 ‘존귀함’입니다. 그 존귀함이 제도를 뛰어 넘어 인간사회의 모든 관계의 기초가 되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뜻이 담겨 있는 소중한
말씀입니다.
현재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은 2015년 14.9%에서 2050년 22.1%로 7.2포인트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향후 30년 동안 미국 사회는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21% 이상)에 진입하게 될 것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현대사회에서 더욱 절실해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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