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0:8-11

 

십계명 중 제4계명에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오늘날에도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수많은 소주제들이 꼬리를 물고 나오는 논제인데 몇 가지 결론적인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오늘날에도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답합니다. 신약의 성도들은 구약 이스라엘의 율법주의자들이 따랐던 규범으로 안식일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구원은 사람의 행위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안식일이 담고 있는 복음을 믿지, 안식일을 지켜서 얻는 행위의 결과를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주일이 안식일입니까?’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아니라고 답합니다. 주일은 원칙적인 의미에서 안식일이 아닙니다. 안식일을 포함하여 속죄일, 안식년, 희년 등은 모두 같은 맥락에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잃어버린 하나님의 안식을 회복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 약속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대속을 이루셨을 때 이미 성취되었습니다. 마치 이미 지급이 끝나 휴지조각이 된 수표를 들고 다니면서 언제 돈을 받을지 걱정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의 주일은 구약에서 말하는 안식일이 결코 아닙니다.

또 다른 중대한 오해는, 일주일에 하루를 노동에서 쉬는 것이 효율적이므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인간에게 유익이 된다는 궁색한 변명입니다. 그 접근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율법이나 성경의 기록이 세속적인 면에서 탁월하고 합리적이라고 해도 우리는 그 합리성을 기초로 신앙을 변증하지 않습니다. 성경과 율법의 핵심은 신앙적인 것이며 신자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십계명은 언약 아래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것이지 전 인류를 위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의 목적을 진술하는 일과 그것을 계명으로 지키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계명에 대한 이런 식의 설명은 계명의 중심을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두지 않고 인간 중심으로 설명하려는 태도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계명은 인간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안식은 활동의 중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안식은 창조의 완성이 가져오는 완벽한 균형과 평강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장소,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 하나님의 거룩한 날은 어디에나 평강과 안식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활동 정체가 아닙니다. 매우 적극적으로 활동하시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안식과 평강의 상태, 완벽한 균형의 상태에서 존재하십니다.

일곱째날에 모든 일을 그치고 안식하셨다는 뜻은 하나님의 창조가 완성되고 피조세계에 하나님의 평강과 안식과 균형이 드리워졌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2 3절에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다는 뜻은 바로 그 하나님의 평강과 안식을 에덴에 두시었던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만일에 아담이 끝까지 순종했더라면 생명나무의 열매를 받아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칼빈). 하지만 아담은 도리어 반역의 길을 택하고 죄를 범하고 타락하였으므로 안식은 더 이상 창조의 원리가 아니라 구원의 원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틀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잃어버린 하나님의 안식을 하나님께서 그 값을 대신 치르시고 하나님의 선택하신 백성들을 다시 하나님의 안식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것이 안식일이 담고 있는 복음입니다.

이스라엘에 주신 안식일의 계명은 명령의 형태로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초청입니다. 구원의 부름, 곧 복음 선포의 예표입니다. 구약시대에도 올바른 신앙을 가진 경건인들은 안식일을 기념하면서 자신의 괴로움과 고난과 희생과 제사의 종결과 하나님의 품에서 최후 안식을 맞이할 것을 기대했습니다(누가복음 2:25-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