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8:29-51

 

여인의 팔순 잔치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나이 삼십을 넘겼을 남편이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기 전에 남편은 자신을 데리고 가까운 강변을 걸었는데, 평소 수줍었던 남편이 그날은 자기의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그렇게 손을 잡은 남편은 자기와 함께 바람 부는 강변을 걸었습니다. 시간! 남편이 죽기 전에 자기의 손을 잡아준 시간이 50년의 힘든 세월을 견딘 힘이 되어주었다고 그녀는 말합니다.

헬라어에는 시간이 카이로스와 크로노스 가지 시간개념이 있습니다. 크로노스는 물리적인 시간이고, 카이로스는 의미를 부여하는 시간입니다.

여인에게는 남편이 손잡아준 시간이 카이로스입니다. 시간의 힘으로 50년을 살고 백년도 견딜 있습니다.

제자들과 저녁을 잡수시던 예수님은 성찬을 가르치시면서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말씀하십니다. 예배는 우리의 시간에 카이로스를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인생 전체를 살아가는 힘과 의미를 얻습니다.

주일아침 예배시간은 짧은 시간입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신자에게 그토록 중요하다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일주일을 살아가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카이로스는 물리적인 크로노스의 시간에 생명을 불어넣는 시간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흙으로 빚어 만드시고 생명을 주셨듯, 물리적인 크로노스의 시간에 하나님의 생명을 불어넣는 시간이 예배이며, 신자가 영이신 하나님과 신비한 연합을 이루는 참으로 신비한 영적 사건이 바로 예배가 갖는 의미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을 잡기 위해 모든 국민들이 자제하며 방역하고 격리하고 있습니다. 모든 교회의 모임이 온라인예배로 시행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혹자는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온라인예배가 과연 현장예배를 대치할 있는가하는 거지요.

만일 저에게 묻는다면 저는 당연히 가능하다 답할 것입니다. 물론 거기에는 많은 상황에 대한 답변 또한 있어야 하겠지요.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온라인예배 현장예배와 굳이 다르다고 주장할 근거는 없습니다. 더구나 요즘처럼 전염병이 퍼지고 있고 방역과 격리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판단이 있을 경우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성경적인 근거를 저는 구약성경의 솔로몬의 기도(왕상8) 다니엘의 기도(6)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구약성도들의 성전에 대한 열심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이 성전(왕상8:29)’이었기 때문입니다. 성전을 완공하고 솔로몬이 드렸던 기도에는 성전에 없는 사정에 처한성도들을 위한 기도가 있습니다. 전쟁에 나가거나, 타국에 포로로 잡혀가 노예생활을 하는 성도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이 성전이 있는 쪽을 향하여 여호와께 기도하거든주는 계신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아보시오며…’

다니엘 6장에 보면, 다니엘은 신앙 때문에 위기를 맞게 됩니다. 그렇지만 하루에 번씩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무릎을 꿇어 기도합니다.

저는 그들의 원거리 기도가 성전 현장에서 드려지는 기도보다 결코 덜하지 않다고 믿습니다. 오히려 임박한 순교 앞에서 신앙을 지키는 실천은 그들의 현장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이라면 어디에 마음이 갈까요?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4:23)”

예배는 시뮬레이션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신자의 인격적인 만남이며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늘의 사건입니다. 온라인예배는 분명한 영적 사건이며, 예배가 가져야할 역사성과 사실성을 모두 갖고 있고, 어디에서 어떤 모습이든, 신자의 신앙고백이 분명할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