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5-6, 27

 

한 선비가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서 사공에게 묻습니다. ‘자네는 글을 쓸줄 아는가?’ ‘모릅니다.’ ‘세상 사는 맛을 모르는군. 그러면 공맹(孔孟)의 가르침은 아는가?’ ‘모릅니다.’ ‘인간의 도리를 모르는군. 그럼 글을 읽을 줄 아는가?’ ‘모릅니다.’ ‘그럼 자네는 왜 사는가?’ 이런 대화 중에 배가 암초에 부딪혀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이번엔 사공이 묻습니다. ‘선비님, 헤엄칠줄 아십니까?’ ‘난 헤엄할줄 모르네.’ ‘그럼 선비님은 죽은 목숨입니다.’ 선비는 많은 지식을 자랑했지만 위기를 맞았을 때 정작 살아남는 법은 모르고 있었지요.

지식과 지혜의 차이는 그렇습니다. 지식은 정보입니다. 정보화시대에서 정보는 재산과 힘을 결정하는 가치가 되었고, 그 사람이 가진 정보가 그 사람의 삶의 지평을 규정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막대한 지식과 정보를 자랑한다해도 사람이 생각과 지혜로 활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국 무용지물입니다. 정보를 분석하고 융합하여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사람의 지혜요 생각입니다.

 눈을 감은 사람은 손이 미치는 곳까지가 그의 세계요, 무지한 사람은 그가 아는 것까지가 그의 세계요, 위대한 사람은 그의 비전이 미치는 곳까지가 그의 세계다(폴 하비)”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식과 지혜의 관계에서 보면 넓은 지식은 지혜의 지평을 넓혀주고 깊은 지혜는 지식에 가치를 부여합니다. 지식은 마치 물질계의 존재와 같고, 지혜는 그 삼라만상을 관조하는 생각과 철학과도 같습니다.

오늘 성경은 세 가지 생각에 대해 교훈합니다. ‘‘육의 생각과 영의 생각, 성령의 생각입니다. 물질을 가지고 물질의 관점만 바라본다면 육의 생각입니다. 물질을 바라보면서 성령의 생각, 즉 하나님의 계획을 생각한다면 영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 결과를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말씀합니다.

속물근성(俗物根性)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금전이나 명예를 제일로 치고 눈앞의 이익에만 관심을 가지는 생각이나 성질을 뜻합니다. 쉽게 말하면, 어떤 사람이 갖고 있는 재물과 명예로 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생각을 말합니다. 오늘 성경이 말하는 육신의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말입니다.

신자들이 보통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단어를 잘못 적용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신자가 좋은 직업으로 성공을 했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일까요? 어떤 신자가 대통령이 되어 최고 실권자가 되었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일까요? 어떤 신자가 뛰어난 재능이 있어서 유명인사가 되면 하나님의 영광일까요? 예를 들어 돈많은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더 많은 돈을 기부하면 더 도덕적인가요? 기부의 액수로 도덕적 가치를 판단하면 그것이 속물근성입니다. 물질이 가치 판단의 중심이 되면 그것이 육신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 안에 이미 존재하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세계에 하나님의 영광이 존재하는 것이지, 피조세계의 그 어떤 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당신의 생명과 삶에는 이미 하나님의 영광이 존재합니다(고후5:17). 단지 그 영광이 다를 뿐입니다(고전15:39-41)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심지어는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영광은 존재합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8:18). 피조물은 인류의 죄와 함께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22)’ 존재일 뿐이지 절대로 우리의 가치가 될 수 없습니다.

청교도 신학자 존 오웬은 영의 생각이란 신자 속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영적 생명의 활동이라고 말하면서, 그것은 영적인 것에 집중하며 영적인 것을 더욱 사랑하게 되며, 영적인 것으로부터 참된 만족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영의 생각으로 자유와 생명과 평안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