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7:20-21
고대 동양사상에서는 ‘하늘나라’가 이 세상 어딘 가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늘 어딘 가에 천국이 있고, 이 땅 어딘 가에 무릉도원이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러한 묵상의 한 방편으로 집안 마당 한 가운데에 연못을 만들고 물에 비친 하늘을 통해 천국 임재를 경험하고자 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천국이 언제 임합니까?’ 이 때 주님께서는
‘천국은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고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고 답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천국은 가시적이거나
공간적인 실현
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천국은
영적이며 동시적입니다. 죽음 이후에 만나는
천국은 동시적으로
지금 여기에
존재합니다. 이것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미’ 우리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엄마의 태중에서 자라고
있는 아기가
있습니다. 엄마의 복중에서
아기는 아직
보호가 필요하고
성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독립적인 생명을
갖고 사랑과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
생명입니다. 아기는 엄마의
복중에 있을
때나 출산하여
가슴에 안고
있을 때에나
엄마에게는 같은
아기입니다. 생명의 방식이
달라졌을 뿐, 엄마에게 사랑받는 아기임은
달라진 바가
없습니다.
천국의
현재성은 이와
같은 이치입니다. 천국은 본질적으로 현세와
내세가 다르지
않습니다. 태중의 아기가
엄마를 통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이며
태중에서나 출산후에나
같은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
에덴에서
태초의 사람은
의와 거룩의
완전한 상태로
창조되었지만, 정도에 있어서는
아직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예비적이고 잠정적인
상태로서, 더 큰
완전성과 영광에
이를 수도
있고, 하나님을 떠나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는
최고의 지복과
자유를 가진
존재였습니다.
아기가
태중에서 엄마와
함께 행복하듯, 태초의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행복했습니다. 영생으로 가는 과정에
있으므로 아직
완전한 상태는
아니지만, 하나님과 함께
누리는 천국은
그대로 완전한
천국이었습니다.
태중의
아기가 바깥세상을
준비하며 성장하듯, 사람은 영생을 위하여
준비되고 성숙합니다. 현재의 천국이 미래의
천국과 다르지
않습니다. 같은 천국을
살고 같은
영생을 누리는
것이지요.
“진정으로 최초의
인간이 정직하게
유지되어 살았었다면
보다 나은
삶으로 넘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는
영혼과 몸이
분리되는 것도
없었을 것이며
부패도 없으며 멸망같은 것도
없으며 한
마디로 말해서
부자연스런 변화는
없었을 것입니다(칼빈주석 168).”
성령으로
거듭난 신자들에게
천국은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미’ 이루어진 완전한 천국을
오늘 여기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에서 말씀하신 대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신비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거듭난
신자에게 천국은
현재성을 갖습니다. 현재의 삶에 영생이
담겨있습니다. 이 땅을
사는 동안에
우리의 모든
관심이 세상에서
잘되는 것에만
있다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에만
온통 집중되어
있다면 진정한
의미의 ‘천국’과는 관계없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신자가
가진 종말신앙의
핵심은 ‘천국’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부귀영화와
만사형통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올바른
종말신앙은 단지
역사의 마지막
순간에만 주목하지
않습니다. 역사를 관통하고
영생까지 이어지는
역동적이고 주도적인
천국의 힘에
주목합니다. 이것이 복음이
갖고 있는
변화의 능력이며, ‘천국이 내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 주님 안에서
깊은 행복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6-27)”
0 Comments
댓글 쓰기